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경험에 의해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고유한 틀을 가진다. 아무리 그 갇힌 틀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그것을 파괴하는 새로운 경험 속에 던져지기 전에는 스스로 그 틀을 탈피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혁신이나 미래는 언제나 낯설게 시작되기 마련이다.
나는 지난 가을, 정말 우연히 이 틀을 깨는 경험을 접할 수 있었다. IR 미팅룸에서 디자인 회사 대표(이하 김대표)에게 OLED Wallpaper TV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디자이너 시각에서 OLED TV의 ‘가치’를 ‘업’시킬 수 있는 사소한 아이디어라도 얻는다면 그것도 행운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새상'(김성희 作)
“OLED Wallpaper TV는 고정관념 상으로는 TV 지만, 유리 한 장으로 너무 얇아서, TV 같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열대어가 살아 움직이는 수족관으로, 때로는 스토리가 담긴 가족 액자로, 때로는 거장들의 명화가 담긴 갤러리로, 그리고 때로는 럭셔리 인테리어 컨셉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다양한 활용도를 설명했다. Wallpaper는 TV라는 기존 개념의 틀을 깨는, ‘TV 너머의 TV’라는 게 내 설명의 요점이었다.
이를 듣던 김 대표는 “Wallpaper는 동양화의 검정색, “검을 현”을 표현하는군요”라고 짤막한 코멘트를 하였다. 그런데 통상 TV라는 이름이 붙으면 TV 너머의 TV를 상상하지 못하듯, 나 또한 처음엔 ‘검정’이라는 단어의 틀을 넘지 못했다. ‘검정이면 다 같은 검정이지, 서양화의 검정이 있고, 동양화의 검정이 따로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없었다. ‘동양화의 검정’이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아 일단 호기심 차원에서 서울대 동양화과 김성희 교수님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서양의 유화는 하얀색 캔버스 위에 물감이 두껍게 발라져서 떠 있는 구조죠. 반면 동양화는 몇 겹의 한지 속에 먹이 깊이 스며들어 종이 자체가 검정과 하나가 되죠. 종이와 먹이 한데 섞인, 깊이 있는 검정이 동양화의 검정인데, 서양화와는 그 깊이와 차원이 다르죠. 물론 동양화의 검정은 디스플레이에서도 구현이 어렵습니다”는 말도 따라 붙었다.
‘아~~ 그런 차이구나’ 교수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뭔가 깨달음이 왔다.
서양화의 하얀 캔버스는 마치 LCD의 백라이트 같았고, 한지와 먹이 하나가 되는 깊이 있는 동양화의 색감은 자발광인 OLED를 설명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Wallpaper가 과연 동양화의 끝없이 깊은 ‘블랙홀의 블랙’을 구현할 수 있을지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물론 그 시도는 쉽지 않았다. 1,000년간 한지 속에 살아온 동양화를 디스플레이 속에 담아내는 작품을 해줄 아티스트를 찾기도 어렵거니와 아티스트를 찾더라도 비용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자문을 했던 김성희 교수께서 마침 15년 만에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어서, 앞선 자문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교수님의 전시 작품 몇 점을 김 대표에게 의뢰하여 영상 처리해 Wallpaper 속에 담았다.

‘검은 달항아리’ (한정용 作)
막상 작품을 담아놓고 보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Wallpaper는 동양화의 깊은 블랙과 한지의 미세한 섬유소 한 올 한 올까지 매우 섬세하게 구현해내고 있었다. 김 교수님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교수님은 전시회 기간 중 Wallpaper를 작품과 동급으로 전시하는 과감한 결정을 단행했다. 본인의 작품으로 향하는 시선을 Wallpaper가 분산시킬 수 있기에, 아티스트 입장에선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IR 회의실에 걸려있던 Wallpaper는 대여되어, 그렇게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그런데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TV인 듯 TV 아닌’ 벽지 같은 OLED TV를 보면서 “저 요상한 블랙 페이퍼로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아티스트들의 문의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전시된 OLED Wallpaper TV엔 어떤 홍보 문구도 없었기에 ‘OLED’도 ‘Wallpaper’도 아닌 ‘THE BLACK PAPER’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이름은 OLED의 가치를 한 눈에 알아본 김 대표가 붙인 별명이었으나, 아마도 아티스트들에겐 기술이나 TV라는 개념보다, 깊은 색감을 보여주는 새로운 종이로 다가간 모양이었다.
이 후 세 분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OLED와 예술이 만나는 콜라보 작업을 진행했다. 프로젝트 명은 ‘THE BLACK PAPER’. 전시회 기간 중 Wallpaper가 얻은 별칭을 따 정해졌다. 지난 1월 25일 종료된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성희 교수 외 역상 조각으로 국내외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조소과 이용덕 교수, 도자기 ‘달 항아리’로 유명한 도예과 한정용 교수 등 3명의 아티스트들은 처음엔 영상 이미지만을 사용하게 해주겠다고 했으나, 결국엔 콜라보한 작품까지 선뜻 기증하였다. THE BLACK PAPER가 준 영감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작품 기증의 대가는 단지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는 더 좋은 디스플레이를 만들어 달라”는 것과 “이를 통해 문화 예술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기업이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요청이 전부였다.

‘Remembering 190111′(이용덕 作)
세 아티스트가 발견한 OLED의 가치는 ‘화질이 좋다’거나 ‘Contrast가 좋다’는 등의 기존 접근과는 달랐다. 예술 작품을 담는 오브제로써의 ‘가치’와 순수 예술과 기술의 콜라보를 통한 새로운 아트의 영역을 여는 창조적 가치를 OLED에서 찾은 것이었다. 제조업과는 다른 시선으로 제품이 아닌, 작품으로 바라본 그들이, 콜라보 과정에서 내린 OLED에 대한 독특한 관점은 무엇이었을까? 아래는 아티스트들이 OLED와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느낀, 나에게 OLED란 어떻게 다가왔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틀을 탈피하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예술계의 거장 세 분이 발견한 OLED의 새로운 가치와 함께, 앞으로 다양한 틀을 통해 발굴하게 될 OLED의 ‘낯선 설레임’을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