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매료의 힘’이 있다. 공간을 통해 아름다운 삶을 만들고자 하는 역할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는 그 힘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심미적 관점에만 집중하는 대신, ‘디자인’의 본질적인 정의가 무엇인지 자주 곱씹어보곤 한다. 공간에 깃든 기본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해내는 동시에 이를 접한 이들에게 새로운 아름다움과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디자인. 기존에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추구하는 스튜디오. 내가 생각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역할은 말하자면 이러하다.
한옥에 살며 일을 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는다. 전세계의 아름다운 공간을 여럿 경험해봤을 텐데, 왜 하필 고른 곳이 ‘한옥’이냐는 의문이 들어서다. 물론 내게도 낯설고 이색적인 타국의 문화가 우리의 것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시기가 있었다. 유학을 하는 동안 자연스레 서양의 라이프스타일과 미적 기준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당시 함께 작업했던 친구들은 각자의 나라가 가진 역사적인 배경에 기반해 창작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들의 방식을 막연하게 좇으려 한 나는, 어느 날 문득 한국의 유서 깊은 역사와 멋진 문화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한국적인 것과 아름다운 것. 두 지점을 이을 일상적인 공간은 충분히 존재할 것이란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한옥을 작업 공간이자 거주 공간으로 삼은 뒤, 예상치 못한 색다른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한옥이 가진 장엄하면서도 숭고한 아름다움은 놀라운 기술력을 갖춘 현대의 오브제와도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특히 직접 설치해 공간에 들인 올레드 TV는 오히려 위압적이지 않게 서서히 한옥에 스며드는 듯한 특별한 기분을 전해주었다.
처음 올레드 TV를 켜자마자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사진이었다. 운영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결과물의 사진들을 커다란 화면을 통해 확인해보고 싶었다. 스크린 위로 몇 장의 사진들이 등장했고, 가만히 그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웹사이트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의 빛과 질감이 올레드TV를 거쳐 다시금 눈앞에 구현되었고, 각 공간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다. 굉장히 얇은 두께의 화면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진 속의 깊은 입체감을 고스란히 전해주면서, 오히려 실제 공간보다도 더 멋져 보이는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게 했다.
마치 거대한 창문 너머로 공간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베젤 등의 부수적 디자인 요소를 전부 배제해 텔레비전의 궁극적 목적인 시청과 컨텐츠 제공의 목표만을 분명히 실현하는 오브제. 올레드 TV는 이처럼 본질에 충실한 나의 디자인 철학뿐만 아니라 한옥의 절제된 디자인 특성과 여러모로 맞닿는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스크린이 담아내는 공간의 사진들을 한참 감상하고 나니, 그 원리가 궁금해졌다.
기존 LCD 디스플레이는 후면에 빛을 내는 판이 있어 이를 통해 색깔이 화면 위로 비춰지는 반면, 올레드 디스플레이는 각각의 픽셀들이 모두 빛을 내 색깔을 조절한다. 블랙 컬러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LCD 디스플레이는 색을 내기 위해 후면의 판에서 빛이 나야 하지만, 올레드 디스플레이는 픽셀을 모두 끄면 곧바로 블랙 컬러가 나타난다. 클라이언트에게 보다 정확한 색을 표현해야 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리를 비롯해 미묘한 차이로 공간의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하는 감성적 도구의 컬러를 잘 활용한 사례인 것이다.
그렇다면 흑백영화와 같은 옛 영상 특유의 색감은 어떻게 구현할까. 지하에 자리한 미디어 룸의 올레드 TV 스크린으로 본 영화들은 이전과는 달리 배우들이 입은 의상, 배경이 되는 공간의 디테일 등이 한층 실감나게 느껴졌다. 과연 <7인의 사무라이>처럼 그레이 및 블랙 컬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쿠로사와 감독의 작품이나 전체적으로 붉은 톤이 감도는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어떤 색감을 새롭게 재현할지 궁금증이 더해져만 갔다. 시야각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 LCD는 빛을 비춰 보이는 고유한 방식에 따라 측면에서 보면 그 색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올레드의 픽셀은 곧 무수한 전구나 다름없기 때문에 측면에서 역시 선명한 색감을 자랑한다. 반드시 정면에서 화면을 바라보거나 한 자리에 앉아 시청하지 않아도, 어느 각도에서든 동일한 디스플레이를 연출해낸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미디어 아트가 그러하듯 그래픽적인 이미지들이 자아내는 움직임을 세세히 파악할 수 있으므로, 건물의 로비나 오피스 안, 가정에서는 공간의 무드를 만드는 라이팅이나 이미지 스크린으로서 두루 활용이 가능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련된 인테리어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텔레비전, 에어컨 등의 전자제품이 이제는 오랜 고민 끝에 벽에 걸린 작품처럼 이른바 ‘월페이퍼 TV’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다.

양태오 한옥 청송재에 설치된 올레드 TV
가구, 오브제 등 공간 내부에 물건을 배치하는 일은 인테리어 디자인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스튜디오이자 현재 거주하고 있는 한옥의 내부 디자인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조화를 찾는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결국 하나의 컨텐츠를 생산하는 일과 같다. 공간을 문장에 비유했을 때, 문장을 구성하는 여러 단어들이 존재하듯 공간에 꼭 어울릴 법한 적재적소의 단어와 같은 아이템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특정 질감을 지닌 소재, 이러한 소재로 만들어진 가구, 이곳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영상이나 음악, 향기 등 무수한 컨텐츠들이 모여 하나의 문장을 완성한다. 어쩌면 수많은 악기들이 모여 그 조합으로 완벽한 선율을 만들어내는 교향곡과도 닮아있다. 내가 아주 작은 향초 등의 아이템 하나를 고를 때에도 신중하고자 하는 이유다. 이 물건 하나가 공간 안에서 의도한 소리를 내줄지, 머릿속에 그린 멜로디를 구현해줄지에 대한 이야기다. 멋진 생김새와 뛰어난 기능을 갖춘 전자제품은 언뜻 보면 한옥과는 다소 상충하는 이미지를 전해준다.
현재 집이자 스튜디오인 한옥 지하에는 이전 주인인 건축가 김영섭 선생님이 만들어둔 지하실이 있다. 1923년, 지어질 당시부터 음악 감상실로 쓰여진 곳으로 지금은 영화 감상실 겸 프라이빗한 서재로 사용 중인데, 사실 이 미디어 룸 안에는 영화 감상용 스크린이 있을 뿐 텔레비전은 설치해두지 않은 상태였다. 어딘지 모를 이질적인 느낌 탓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올레드 TV가 들어선 다음,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아주 오래 전 이곳에 존재하고 있던 물건인 듯 본질적인 디자인을 지향하는 한옥 내부 구조와 상당히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과시하지는 않는 겸손한 태도. 올레드 TV와 한옥의 조화는 이러한 태도를 지녔다. 한옥 곳곳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올레드 TV를 보자 미디어 룸뿐만 아니라, 거실의 벽난로 위나 차를 마시는 다실에 설치해 갤러리 모드를 활용한 미디어아트 등의 전시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을 완성하고 싶어졌다.
여기에 자연의 풍경을 빌려 안으로 들여온다는 한옥의 ‘차경’이라는 요소처럼, 아름다운 도시의 경관이나 드넓은 천혜자연을 고스란히 매일 마주할 수 있는 창이 되어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동시에 고객들과의 커뮤니케이션 통로이자 미디어아트를 체험할 도구, 프레젠테이션이나 자신의 작품을 마음껏 감상하고 싶은 디자이너 지인들에게 추천할 법한 라이프스타일의 주요 요소임을 실감했다.

양태오 한옥 능소헌 미디어 룸 벽면에 설치된 올레드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