Красиві
그녀가 속삭였다.
며칠간 계속된 눈으로 얼어붙은 광장도, 뼈를 깎는 듯한 영하의 겨울 바람도, 고개를 들면 보이던 찬란한 별로 가득했던,
그 모스크바의 하늘 아래에서는 어찌되었던 좋았던 것이다.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때를 떠올리려고 노력을 한다면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다.
선명하진 않지만 푸른빛이 돌던 눈동자, 보조개 밑으로 보이는 주근깨, 하지만 기억이란 애비하게도
얼굴의 윤곽을 그리다 말고 갑작스럽게 모스크바의 밤하늘을 그려버리곤 한다.
나는 그녀가 아니라, 그 별빛으로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봤던 그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밤하늘 그 자체를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동안 찍어온 수많은 모스크바의 밤 하늘 사진을 커다란 화면으로 옮겨 봐도 그때의 그 감정이 쉽게 돌아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를 흔들며 더욱 애타게 할 뿐이었다.
부동항에서 불어오던 바닷바람의 부재인가 멀리서 들려오던 구슬픈 민요 멜로디의 부재인가?
나는 줄곧 화면을 응시하며 깊게 생각해 보았지만 그 애매함의 원인은 끝내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은 4,5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나는 집들이에 초대되어 거실의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때마침 피로연 영상을 보는 시간이 찾아왔고, 마지막 불꽃놀이를 하는 장면에서 나는 문득 모스크바의 밤하늘을 떠올렸다.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다채롭게 빛나는 불꽃의 압도적인 색의 심도 차이,
그것은 오래 전 모스크바의 밤하늘에서 보아왔던 깊은 어둠과 밝은 별의 빛남과 같았고, 그 동안 LCD 패널에서는 볼 수 없었던,
OLED 패널이 아니면 표현 할 수 없었던, 내가 잊어왔었던 완벽한 어둠(Perfect Black)이었던 것이다.
빛과 어둠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한편으로는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밤 하늘이 어두울수록, 별이 더 밝게 보이는 하는 법.
현재 상용화된 LCD 디스플레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어두움을 표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냥 꺼버리면 되잖아?’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그리 쉽지 않다.
BLU(Back Light Unit)에서 발생하는 빛 샘 현상으로 인해, Halo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어두움을 표현한 부분의 LED를 끄더라도, 상대적으로 밝게 표현된 부분의 LED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인해 회색 빛의 그라데이션이 일어나는 것이다.
반면 OLED 패널은 자발광으로 BLU 없이 빛을 내기에 이런 일이 없이 완벽한 어두움, Perfect Black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OLED가 표현하는 Perfect Black은 단순 별과 관련된 Scene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에서도 우위를 나타낸다.
왕좌의 게임 시즌8의 3번째 에피소드에서 등장한 전투 장면이 가장 최근의 예시라고 하겠다.
(HBO)
스토리 설정 상 죽은 자의 군대는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춘 채 주인공의 군대와 싸우는데,
완전히 대비되는 이 두 진영의 웅장한 충돌을 표현하는 것이 어지간히 쉬운 일은 아니었나 보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LCD TV로는 회색 얼룩으로 가득 찬 화면만 보였고, 오직 OLED TV로만 감독이 의도했던 전투를 감상 할 수 있었다.
어두움의 표현은 게임을 보다 더 입체적이고 생동적으로 표현하는데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Doom은 주된 무대가 지옥인 만큼 대체적으로 배경은 어두컴컴하게 표현된 반면,
그 속에서 펼쳐지는 불꽃과 살점 튀는 전투는 밝은 원색으로 표현되었다.
(Bethesda)
이 인위적인 색 차이로 당연히 LCD 패널 모니터에서는 제작진이 의도한 ‘혼돈 속의 지옥’을 느낄 수 없다.
이러한 게임의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Doom이 비롯해 근래에 출시된 많은 게임들의 첫 구동 화면은 그 무엇도 아닌 ‘밝기 및 대비’ 메뉴이다.
하지만 OLED 패널 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단 밤하늘뿐이겠는가?
해변가 마을에서 넋을 놓고 본 찬란한 석양, 숨막힐 정도로 쟁쟁했던 전투 속에서 결국 승리한 게임,
몇 차례 다시 봐도 감동이 잊혀지지 않던 명작 영화 등 장르를 불문하고 OLED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본다면
그날의 생생함, 그 순간의 긴장감, 그리고 감동이 한층 깊게 다가오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날이 추운 밤이 오면, 무심코 그 나날들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더 이상 눈을 감고 조용히 추억의 밑바닥을 되짚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저 거실의 OLED TV에 밤하늘 사진을 띄우고, 편히 누워 화면을 올려볼 뿐이다.
서울의 어느 작은 아파트에 별빛 그라데이션이 그려지고, 나는 그렇게 모스크바로 되돌아간다.
눈앞에 펼쳐지는 건 분명 별빛으로 가득했던 그 겨울 밤의 하늘이었다.